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철기시대 고조선, 부여, 고구려의 복식

본문

철기시대 고조선, 부여, 고구려의 복식

철기시대 고조선, 부여, 고구려의 복식
철기시대 고조선, 부여, 고구려의 복식

부족 국가 시대는 철기시대에 해당되는데요. 그 시기는 기원전 300년 무렵부터 기원후 300년 무렵까지입니다. 이 시대는 철제 농기구의 사용으로 농업이 더욱 발달하였고, 농기구와 무기 생산을 중심으로 수공업이 더욱 융성하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상업과 무역도 발달하였습니다. 이 시기 우리 한반도에는 여러 부족 국가들이 공존했습니다. 부여, 고구려, 동예, 옥저, 삼한이 바로 이들 국가입니다. 지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부여는 북만주 지역에 존재했던 국가입니다. 부여의 아래쪽에 고구려가 있었는데요. 고구려는 압록강의 지류인 동가강 유역 졸본 지역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고구려의 동쪽 부근에 옥저가 있었습니다. 옥저는 지금의 함경남도 해안지대에서 두만강 유역 일대에 걸쳐 존재했던 부족 국가입니다. 옥저의 아래쪽에는 동예가 있었습니다. 동예는 지금의 원산 일대에서부터 경상북도 영덕에 이르는 동해안 지역과 강원도 북부 지방에 존재했던 부족 국가입니다. 이 시기 한반도의 중남부지방에는 삼한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삼한은 마한, 진한, 변한을 말하는데요. 마한은 경기·충청·전라도 지역에, 진한과 변한 은 경상도 지역에 존재했던 부족 국가들입니다. 철기시대, 즉 부족 국가 시대가 되면, 고고학 유물뿐만 아니라, 드디어 의생활에 대한 문자 기록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기록들은 우리의 역사서에 기술된 것은 아니고, 중국의 역사서에 기술된 것들입니다. 고대 중국인들은 주변 국가의 역사와 풍습에 대해서도 기록을 남겼는데요, 그 기록 중에서 우리 한반도의 부족 국가 시대 사람들의 의생활에 관한 내용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부족 국가 시대 사람들의 복식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족 국가 시대 여러 나라의 복식에 대해 공부하기에 앞서서, 철기시대 고조선의 복식에 대해 잠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철기시대 고조선의 복식

이 고조선은 청동기문화를 배경으로 한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입니다. 그런데 고조선 후기가 되면 고조선에도 철기문화가 보급되고 농업과 수공업이 더욱 발전하고 대외교역도 확대됩니다. 이 무렵에 정치적 변화도 발생하게 되었는데요. 기원전 194년 위만이 집권하게 되면서 정권 교체가 이뤄진 것입니다. 이 철기문화의 고조선은 기원전 108년 한 무제에 의해 왕검성이 함락될 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철기시대 고조선의 복식에 대해서는 『사기』 조선 열전과 『한서』 조선전에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위만의 복장에 대해서 '추결 만이복(魋結蠻夷服/椎結蠻夷服)'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추결이라는 것은 이 몽둥이처럼 생긴 결발, 즉 상투를 지칭합니다. 이 기록에서 고대 우리 민족의 머리 모양을 알 수 있는데요. 이미 고조선 시대부터 상투를 틀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이복이라는 것은 오랑캐의 옷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오랑캐의 옷이 정확히 어떤 형태를 지칭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중국인의 옷과는 다른 형태였다라는 사실을 유추해 낼 수 있습니다.

부여의 복식

다음으로, 부여의 복식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부여는 기원전 2세기경부터 494년까지 북만주 지역에 존속했던 국가입니다. 부여의 복식에 대해서는 『삼국지』 위서와 『진서』 동의 열전 등에 기록이 남아있는데요. 먼저 『삼국지』에 실린 부여 복식에 관한 기록을 같이 보시겠습니다. 국내에서 입는 의복은 백의를 숭상하는데, 백색 베로 만든 소매가 큰 포[白布大袂袍]와 바지[袴]를 입으며, 신은 가죽신을 신는다. 그러나 외국에 나갈 때는 증(繒)·수(繡)·금(錦)·계(罽)를 즐겨 입는다. 대인(大人)은 여우·살쾡이·원숭이·희거나 검은 담비의 가죽으로 만든 갖옷[裘]을 즐겨 입는다. 그리고 금은으로 모자를 장식한다. 명마(名馬)와 적옥(赤玉), 담비와 원숭이 및 아름다운 구슬[美珠]이 산출되는데, 구슬의 크기는 대추만 하다. 집집마다 자체적으로 갑옷과 무기를 보유하였다. 상을 당하면 남녀가 모두 순백색의 옷을 입되, 부인은 베(布)로 만든 면의(面衣)를 착용하며 반지나 패물 따위는 몸에서 제거하니, 대체로 중국과 비슷하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진서』 동이열전 부여국에도 비슷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조금 다른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외국에 사신으로 갈 때에는 금(錦)·계(罽)를 입었고, 금은으로 허리를 장식하였다. ”라는 내용입니다. 이상의 기록들에서 우리가 주목해서 살펴보아야 할 문구들을 찾아서 좀 더 구체적으로 하나씩 공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부여인이 '국내에서 입는 의복은 백의를 숭상했다'라는 부분입니다. 부여인이 흰 옷을 좋아했다는 것인데요. 여러분, 혹시 과거에 우리 민족을 '백의민족'이라고 부르기도 했다는 이야기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백의민족이라는 말은 조선시대 사람들이 흰 옷을 무척 좋아해서 붙여진 우리 민족의 별칭입니다. 그런데 조선시대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미 부여시대 사람들도 백의를 숭상했다고 하니, 백의를 선호하는 풍습이 정말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주목할 부분은 '백색 베로 만든 소매가 큰 포와 바지, 가죽신'입니다. 부여 사람들의 기본 의복이 포와 바지와 가죽신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은 '외국에 나갈 때는 증·수·금·계를 즐겨 입는다'라는 부분입니다. 증은 당시 모든 견직물의 총칭으로 사용된 말이었습니다. 수는 자수를 말합니다. 금은 고대의 직물 가운데 가장 화려하고 매우 귀하게 여겨진 견직물인데요. 여러 가지 색실을 사용해서 다채롭게 문양을 짠 중조직의 문 직물을 말합니다. 계는 모직물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이처럼 부여 사람들은 국내에 있을 때와는 달리 외국에 나갈 때 더욱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소재의 의복을 입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대인은 갖옷을 즐겨 입는다'라는 내용입니다. 갖옷은 가죽옷을 말합니다. 지금도 동물의 털이나 가죽으로 만든 모피는 대단히 고급 소재로 여겨지고 있는데요. 부여에서도 신분이 높은 사람은 가죽옷을 입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부여는 북만주 일대에 있었기 때문에 겨울이 매우 추웠을 것입니다. 가죽은 혹한의 겨울을 견뎌내는데 가장 적합한 의복 소재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중요한 대목은 부여 사람들이 '금은으로 모자를 장식한다', '금은으로 허리를 장식한다'라고 한 부분입니다. 금이나 은으로 모자와 허리띠의 일부분에 장식을 했음을 알 수 있는데요. 금은으로 만든 모자와 허리띠 장식은 이후 삼국시대의 장신구에서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다음은 '아름다운 구슬이 산출된다'라는 부분입니다. 아름다운 구슬은 장식 옥을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선사시대부터 우리는 다양한 재료와 형태의 옥 장신구를 목걸이와 귀걸이 등에 사용해 왔습니다. 부여에서도 이러한 풍습이 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고구려의 복식

다음은 고구려의 복식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구려 복식에 대해서는 별도의 수업에서 더욱 자세히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다만, 이번 시간에는 부족 국가 시대 초기 고구려의 복식 기록에 대해서만 간단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고구려의 인근에 존재했던 다른 부족 국가들, 즉, 옥저나 동예의 복식과 풍속이 고구려와 유사하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당시 고구려의 복식을 이해하면 당시 옥저와 동예의 복식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구려는 기원전 37년 부여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주몽에 의해 건국되었습니다. 부족 국가 시대, 즉 초기 고구려의 복식에 대해서는 『후한서』 동이열전 고구려에 기록이 남아 있는데요,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두 깨끗한 것을 좋아한다. 공식 모임[公會]에서 의복은 모두 금(錦)·수(繡)를 입고 금은(金銀)으로 장식한다. 대가(大加)와 주부(主簿)는 머리에 책(幘)을 쓰는데 이는 관책(冠幘)과 같으나 뒤[後]가 없다. 소가(小加)는 절풍(折風)을 쓰는데 그 모양이 변(弁)과 같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기록에서 주목할 만한 대목을 몇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고구려 사람들이 깨끗한 것을 좋아한다는 부분입니다. 앞서 부여인들이 백의를 숭상한다고 했는데요, 고구려인들이 깨끗한 것을 좋아한다는 내용으로 볼 때 우리 민족이 흰 옷을 좋아했던 것은 아마도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습속과 연결된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다음은 고구려 사람들이 공식 모임에서 금·수를 입고 금은으로 장식한다라는 부분입니다. 부여 사람들도 외국에 나갈 때 증·수·금·계를 즐겨 입었고, 금은으로 모자와 허리를 장식했는데요. 고구려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공식 복장으로 화려한 소재의 의복을 착용했고, 금은으로 복식을 장식하는 것을 좋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이 기록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내용은 바로 모자, 즉 관모에 관한 부분입니다. 대가와 주부는 머리에 책을 쓰고, 소가는 절풍을 쓴다고 했는데요. 신분의 지위 고하에 따라서 서로 다른 관모를 쓰게 한 것입니다. 지위 고하에 따른 규제가 의복에서는 아직 나타나지 않는 반면, 관모에서 먼저 나타난다는 사실이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책과 절풍은 고구려의 여러 가지 관모 가운데 일부입니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