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의 한국인의 의생활에서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는 모두 선사시대에 해당합니다. 선사시대는 역사 이전 시대를 말합니다. 즉, 문자로 기록된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시대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기록이 없는데 이 시대의 복식에 대해서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발굴된 고고학 유물자료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의생활을 유추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사시대 한국인의 복식을 이해하는 데에는 고고학 유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먼저, 구석기시대의 한국인의 의생활에 대해 공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와 그 주변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시대부터입니다. 우리나라의 구석기시대는 약 70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까지 해당하는 시기입니다. 구석기시대는 전기, 중기, 후기로 나누어지는데요. 특히 후기 구석기시대는 약 4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까지 해당합니다. 구석기시대의 생활을 살펴보면, 이 시대의 사람들은 주로 동굴이나 바위 그늘에 살면서 사냥과 채집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대표 유물로는 뗀석기를 들 수 있습니다. 이 뗀석기는 돌을 깨서 만든 연장인데요. 뗀석기를 사용해서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필요한 생활도구나 무기를 만들어서 썼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 시대의 의생활을 살펴보면, 복식과 관련된 고고학적 증거자료가 발견된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한반도는 온대기후이고, 온대지역 겨울의 생존조건을 고려해본다면 구석기시대의 사람들에게도 옷은 필수적인 방한도구였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따라서 이 시대 사람들은 주로 사냥한 동물에서 털이나 가죽을 벗겨내어 이것을 몸에 걸치거나 둘러 입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지금 보시는 유물은 연천 전곡리에서 출토된 구석기시대의 주먹도끼입니다. 이 주먹도끼는 자르는 작업, 긁는 작업, 찍는 작업 등에 이용된 도구인데요. 사냥, 도살, 가죽이나 나무, 뼈의 가공 작업 등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신석기시대의 한국인의 의생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는 기원전 1만 년부터 기원전 천년까지 해당하는 시기입니다. 신석기시대는 두 시기, 즉, 고신 석기 시기와 신신 석기 시기로 나누어집니다. 고신 석기는 기원전 1만 년부터 기원전 6천 년 사이의 시기로서 구석기 이후 본격적인 신석기시대가 도래하기 전까지의 과도기적 문화양상을 보이는 시기입니다. 신신 석기는 기원전 6천 년부터 기원전 1천 년까지의 시기로서 본격적인 신석기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석기시대의 생활을 살펴보면, 이 시대의 사람들은 주로 강변이나 해변에서, 혈연을 바탕으로 한 씨족 단위의 취락을 형성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가족단위로 움집에 거주하면서, 중소형 짐승의 수렵, 어로와 조개채취, 농경과 목축 이러한 것들을 주요 생업으로 삼았습니다. 신석기시대의 대표 유물은 바로 간석기입니다. 간석기는 돌의 날 부분이나 전체 면을 갈아서 만든 석기입니다. 이 시대의 또 다른 대표 유물로 토기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빗살무늬토기가 가장 대표적인 종류입니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토기를 제작해서 사용했는데요. 이를 통하여 이 시대 사람들이 식량을 저장하고 정착생활을 했다는 사실을 유추해 낼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이 시대 사람들의 의생활은 어땠을까요? 신석기시대가 되면, 드디어 우리의 의생활과 관련된 고고학적 유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가락바퀴, 뼈바늘, 그리고 각종 장신구들입니다. 가락바퀴는 방추차라고도 하는데요, 섬유를 꼬아서 실을 만드는 도구입니다. 짧은 섬유의 경우는 실을 길게 이으면서 꼬임을 주어서 실을 만들고, 긴 섬유는 꼬임만을 주어서 실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 가락바퀴는 인류의 가장 중요한 발명품 가운데 하나이며, 방적 구, 즉, 실 만드는 도구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입니다. 재질은 토제, 석제 등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데요.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에는 주로 토제가 많습니다. 형태 또한 원판형, 구슬형 그리고 원추형, 주판 알형 등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지금 보시는 가락바퀴가 바로 신석기시대의 것인데요. 이 유물의 경우, 재질은 토제이고 형태는 원추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 이 가락바퀴를 이용해서 어떻게 섬유를 실로 만드는지 그 원리를 잠깐 설명드리겠습니다. 먼저 여러분들이 기억하셔야 하는 것은, 이 가락바퀴 하나만으로 실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가락바퀴에는 반드시 가운데 구멍에 끼울 수 있는 막대, 즉, 가락이 필요합니다. 이 가락은 아마도 목제와 같은 유기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사라지고 무기물인 가락바퀴만 남아있게 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선사시대의 가락과 가락바퀴 사용법에 대해서는 잉카제국의 후손인 께로족의 방적 문화를 통해 추정이 가능한데요. 순서를 추정해 보면, 먼저, 가락을 가락바퀴에 꽉 끼웁니다. 그리고 가락에 실의 원료가 되는 섬유를 동여매서 고정시킵니다. 그리고 가락을 공중에 수직으로 늘어뜨린 채로 한쪽 방향으로 돌려줍니다. 그러면 이 가락바퀴의 무게로 인해서 가락의 중심이 잘 잡히면서 회전도 잘 되죠. 이렇게 가락이 빠르게 회전하면 섬유 가닥들에 꼬임이 생기면서 실이 되어 가락에 감기게 됩니다. 이런 원리로 실이 만들어지는데요. 보다 생생한 이해를 위해서 남미 고산지대 께로족의 방적 모습을 영상으로 같이 한번 보시겠습니다. 섬유를 손으로 잡아 늘이고 있습니다. 야마의 털이죠. 그리고 가락을 빠르게 돌려줍니다. 다시 섬유를 늘이고, 다시 가락을 돌리고. 이런 식으로 반복해서, 섬유를 늘이고, 가락을 돌리고 하면서 실을 만드는 것입니다. 만약 지금 영상에서 보신 것처럼 동물의 털이 아니라 식물인 마섬유와 같은 인피 섬유의 경우에는 당겨서 늘일 수가 없기 때문에 아마도 섬유의 끝과 끝을 비벼서 이어주는 식으로 섬유 길이를 연장시키면서 가락을 돌렸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가락바퀴와 함께 신석기시대의 또 다른 중요한 의생활 유물로 뼈바늘이 있습니다. 이 뼈바늘은 신석기시대의 복식문화 수준과 관련해서 우리에게 중요한 몇 가지 추정들을 가능하게 해 줍니다. 바늘은 머리 부분에 실을 꿰어서 바느질에 쓰는 도구인데요. 이 바늘이 유물로 발견되었다는 것은 이 시대 사람들이 바느질, 즉 봉제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봉제 활동은 천을 바느질해서 옷을 짓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런데 옷을 지어서 입으려면 먼저 그 재료가 되는 천이 있어야겠죠? 이 천은 주로 직기라는 도구를 통해서 만들어지는데요. 직기는 대부분 나무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선사시대의 유물로 남아 있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가장 이른 시기의 직물 잔 편들 이 기원전 8,000년부터 기원전 7,000년 사이 서아시아 유적지에서 발견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신석기시대의 가락바퀴와 뼈바늘이 출토되었기 때문에 직조 활동과 봉제 활동이 모두 이 시기부터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이 뼈바늘은 옷을 봉제하는 데 사용되었을 수도 있지만, 옷뿐만 아니라 가마니와 같은 편물을 꿰매는 데에도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지금 보시는 것이 신석기시대의 뼈바늘과 바늘 통인데요. 길이와 굵기가 다양한 여러 종류의 바늘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은 신석기시대의 장신구입니다. 신석기시대의 대표적 장신구는 조개팔찌입니다. 신석기시대의 패총 유적지에서 조개로 만든 팔찌가 다량으로 출토되어서 우리 민족이 아주 오래전부터 손목에 팔찌를 끼는 습속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개팔찌는 두 가지 형식이 있었는데요. 지금 이 유물들에서 보시는 것처럼, 조개의 가운데 부분을 깬 다음 갈아서 둥근 고리 형식으로 만든 것도 있고, 조개의 양쪽 끝을 뾰족하게 한 후에 두 개를 마주 이어서 손목에 끼우는 그런 형식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신석기시대의 뼈 비녀인데요, 사슴뼈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뼈 비녀가 발굴되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이미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결발, 즉 머리를 묶는 풍습을 지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개팔찌, 뼈 비녀 이외에 목걸이도 있습니다. 목걸이는 목에 거는 데 사용된 재료가 오래 두면 흔적이 사라지는 유기질 끈이었기 때문에 현재까지 온전하게 남아있는 것은 없습니다. 때문에 전체적인 목걸이 형태를 알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목걸이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수식품들이 있는데요. 주로 돌이나 동물의 뼈, 또는 옥석 등으로 만들어진 것이 많습니다. 신석기시대의 목걸이 수식은 상단부 투공 형식과 대롱 형식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요. 지금 보시는 수식들이 모두 상단부 투공 형식입니다. 가장 왼쪽은 돌로 만든 수식인데요, 위쪽 가운데에 작은 구멍이 있습니다. 그 옆은 것은 상어이빨로 만든 역 삭감형 수식입니다. 역시 위쪽 가운데에 3mm의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다음 것은 옥으로 만든 유선형 수식입니다. 단면은 타원형인데요. 위쪽 가운데에 4mm의 구멍이 뚫려 있고, 그 아래에 3줄의 홈이 파여 있습니다. 가장 오른쪽의 유물은 연옥으로 만든 장방형 수식입니다. 역시 위쪽 가운데에 2mm의 작은 구멍이 뚫려 있죠. 이러한 구멍들이 아마도 목걸이 끈을 끼웠던 자리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 다른 형식인 빨대와 같은 대롱 형식의 수식을 보시겠습니다. 지금 보시는 두 개의 유물이 모두 대롱 형식인데요, 왼쪽 것은 백옥으로 만든 대롱형 수식입니다. 단면은 타원형인데요, 5mm의 투공이 빨대처럼 길이방향으로 길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오른쪽 것은 연녹색 납석으로 만든 대롱형 수식입니다. 역시 1cm의 투공이 길이방향으로 나 있습니다. 왼쪽 것과는 달리 가운데가 약간 볼록한 것이 모양이 좀 다릅니다. 지금까지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한국인의 의생활에 대해 공부해 보았습니다.
가야의 복식 특징과 종류 (0) | 2022.07.27 |
---|---|
철기시대 옥저, 동예, 삼한의 복식 (0) | 2022.07.27 |
철기시대 고조선, 부여, 고구려의 복식 (0) | 2022.07.27 |
청동기시대 한국인의 의생활 (0) | 2022.07.26 |
한국복식이란 무엇인가? (0) | 2022.07.26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