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저와 동예의 복식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옥저의 복식에 대해서는 『후한서』 동이열전 동옥저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언어, 음식, 거처, 의복이 (고) 구려와 유사하다. ”는 간단한 내용입니다. 앞서 공부했던 고구려의 복식에 근거해서 옥저의 복식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동예의 복식에 대해서는 『후한서』 동이열전 예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노인들은 자신들이 (고) 구려와 같은 종족이라 말하는데, 언어와 법령과 풍속이 대체로 유사하다. 남녀 모두 곡령(曲領)을 입는다. 삼(麻)을 심는 것을 알고 누에를 길러 면포(緜布)를 만들었다. ”는 내용입니다. 동예의 풍속도 옥저와 마찬가지로 대체로 고구려와 유사했는데요. 다만 의복에 있어서 남녀 모두 곡령을 입었다는 점이 특별한 풍속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곡령(曲領)은 둥근 깃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깃은 서양 의복에서 '네크라인(neckline)' 또는 '칼라(collar)'에 해당되는 부분의 명칭인데요. 인체의 목 부분에 닿아 있는 의복의 구성 부위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곡령을 입었다는 것은 바로 둥근 깃의 옷을 입었다는 말이죠. 곡령과 대비되는 깃의 형태로서 직령(直領), 즉 곧은 깃이 있습니다. 미리 잠깐 말씀드리자면, 고구려 의복에서는 직령, 즉 곧은 깃의 형태가 많이 보입니다. 따라서 동예의 곡령 풍속은 고구려의 복식과는 조금 다른 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다음은 동예의 의복 소재에 관한 내용입니다. 동예 사람들이 마를 심는 법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마를 심어서 무엇을 했을까요? 아마도 마섬유를 만들고 마직물을 제직 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앞서 공부했듯이 우리나라는 이미 기원전 4세기 고조선에서 12승의 섬세한 마직물을 사용했습니다. 부족 국가 시대에도 마직물의 사용 풍습이 지속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음은 누에를 길러서 면포를 만들었다는 기록입니다. 누에를 길러 뽑아낼 수 있는 섬유는 견섬유입니다. 따라서 이 기록에서 면포는 견직물을 지칭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흔히 면포라고 하면 이것을 면직물이라고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견직물 면포(緜布)와 면직물 면포(綿布)를 혼동할 수 있는데요. 이 기록에서 면포는 견직물 면포(緜布)라는 것을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다음은 삼한의 복식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마한입니다. 마한은 기원전 1세기부터 3세기까지 한강 일대와 충청도, 전라도 지역에 분포했던 54개 소국의 연맹체입니다. 마한의 복식에 대해서는 『후한서』 동이열전 한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한 사람들은 농사짓고 누에 치는 법을 알아서 면포(緜布)를 짰다. 금(金)·보(寶)·금(錦)·계(罽)를 귀히 여기지 않으며 오직 영주(瓔珠)를 중히 여겨 옷에 달아 장식하거나 목에 걸거나 귀에 달기도 했다. 그들은 대체로 머리카락을 틀어 올리고 그것을 그대로 드러내 놓으며, 베[布]로 만든 포(袍)와 짚신[草履]을 신었다.”라는 내용입니다. 이 기록에서 몇 가지 주목되는 점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누에 치는 법을 알아서 면포를 짰다는 내용입니다. 동예와 마찬가지로 마한에도 견직물 제직 기술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마한의 의생활에서 다소 특이한 점은, 마한 사람들이 금과 보물, 그리고 금·계, 즉, 고급 견직물과 모직물을 그다지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대신에 영주, 즉 구슬로 만든 목걸이나 귀걸이를 귀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지금 보시는 유물은 경기도 김포 일대에서 출토된 부족 국가 시대의 구슬 장신구입니다. 투명한 수정과 홍옥이 아름답게 연결된 것을 볼 수 있는데요. 마한 사람들이 귀중하게 여겼다는 영주를 짐작해볼 수 있는 유물입니다. 마한 사람들의 머리 모양은 상투를 틀어 올리는 식이었고, 거기에 별도의 모자를 쓰지 않음으로써 상투가 그대로 드러났다고 합니다. 앞서 고조선 사람들도 상투를 틀었다고 했는데요. 마한의 머리 모양 풍속과 고조선의 머리 모양 풍속이 유사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한 사람들은 포와 짚신을 기본 의복으로 착용했는데요. 짚신을 신었다는 부분은 앞서 부여 사람들이 가죽신을 신은 것과는 다른 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다음은 진한의 복식입니다. 진한은 기원전 1세기부터 3세기까지 경상도 지역, 특히 대구와 경주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했던 12개 소국의 연맹체입니다. 진한의 복식에 대해서는 『후한서』 동이열전 진한에 다음과 같이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누에치기와 뽕나무 가꿀 줄을 알고 겸포(縑布)를 짠다. ”라고 했습니다. 겸포는 실이 가늘고 물이 빠지지 않을 정도로 아주 곱고 치밀한 조직을 가진 견직물의 일종인데요. 경사나 위사에 2올의 실을 함께 사용하여 아주 치밀하게 짠 직물입니다. 진한의 견직물 직조 기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마지막으로 변한의 복식입니다. 변한 은 변진이라고도 불렀는데요. 변진은 경상도 지역, 특히 김해와 마산 지역에 자리 잡은 12개 소국의 연맹체입니다. 변진의 복식에 대해서는 『후한서』 동이열전 변진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변진은 진한과 뒤섞여 사는데, 성곽과 의복은 모두 같으나 언어와 풍속은 다른 점이 있다. 그 사람들의 형체는 모두 장대(長大)하고 머리털이 아름다우며 [美髮] 의복이 깨끗하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기록에서 변한의 의복은 기본적으로 진한과 같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변한 사람들은 신체가 크고 또 머리카락이 아름답고 의복도 깨끗했다고 하는데요. 북쪽의 고구려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남쪽의 변한 사람들도 깨끗한 것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부족 국가 시대의 복식에 대해 공부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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