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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여자의 평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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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여자의 평상복

고려시대 여자의 평상복
고려시대 여자의 평상복

고려시대 여자의 평상복에 대해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려도경』 에는 고려시대 여자의 평상복에 관한 자세한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다음 내용은 『고려도경』 부인 편 서문의 앞부분인데요, 같이 한번 읽어 보시겠습니다. “신(臣)이 듣기에, 삼한(三韓)의 의복 제도에서는 염색한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다만 화문(花文)을 금지하므로 어사(御史)가 문라(文羅)나 화릉(花綾)을 입은 사람을 보게 되면 그 사람을 처벌하여 단죄한다. 백성들은 금령을 잘 지키고 감히 금령을 무시하지 못한다. 옛 풍속에 의하면 여자 의복은 백저(白紵) 황상(黃裳)으로서, 위로는 왕족이나 귀족[公族貴家]으로부터 아래로는 백성들 처첩(妻妾)에 이르기까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한결같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기록에서 고려의 여인들이 평상복으로는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백저 황상', 즉 백색 모시 저고리와 황색 치마를 널리 입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귀족과 평민의 구분은 직물 문양이나 직물 종류를 통해 엄격히 구분했는데요, 귀족은 화문 장식이 허용되었고, 문라·화릉과 같은 고급 견직물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문라는 무늬가 있는 라직물이고, 화릉은 꽃무늬가 있는 능직 물입니다. 이러한 고급스러운 문양 견직물들이 평민들의 백저 황상에는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고려도경』 부인 편에는 또 귀부인의 평상복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여기에 등장하는 귀부인의 복식 품목으로는 몽수, 백 저포, 넓은 바지, 허리띠, 금방울, 향주머니, 황색 치마 이러한 것들이 있습니다.

귀부인의 복식 품목

귀부인의 복식 품목에 대해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몽수입니다. 몽수는 여인들의 머리쓰개입니다. 몽수는 검은색 라(羅) 직물로 만드는데요, 3폭에 길이가 8척이며. 정수리부터 아래로 늘어뜨리는데 얼굴만 드러나게 하고 완전히 땅까지 내려오는 형태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왕실[宮府]의 잉첩(媵妾), 고위 관료[國官]의 첩(妾), 백성의 처(妻), 잡역을 하는 여종[婢女]의 경우에는 일을 해야 하므로 몽수를 늘어뜨리지 않고 정수리에서 겹쳐지게 착용했고 옷을 걷어 올리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난한 집에서는 몽수가 없다고 했는데요, 이것은 몽수의 가격이 은[白金] 1근에 해당해서 여력이 안 되기 때문이지 사용을 금지했기 때문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이로 볼 때, 몽수는 고려 여자의 보편적 머리쓰개였지만 경제적 사정에 따라 사용 여부가 결정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공경(公卿)이나 귀인의 부인이 말을 탈 때는 몽수와 함께 차양이 있는 관모, 즉 입(笠)을 착용했는데요, 『고려도경』의 저자인 서긍은 이러한 모습에 대해 “당나라의 궁인들이 말을 탈 때 썼던 멱라(冪䍦)의 유제인 듯하다. ”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고려 여인들의 몽수와 입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당의 멱라를 이해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당나라의 멱라는 그 기원이 오랑캐[戎夷]들로부터 생겨난 것이었다고 합니다. 전신을 덮어 가려서 길에서 보이지 않도록 한 것이었는데요, 왕공(王公)의 집안에서도 사용했습니다. 영휘(永徽) 연간(650~655년), 즉, 7세기 중엽 이후에는 점차 멱라 유행이 사라지고 길이가 짧은 유모(帷帽)를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보시는 것은 당나라의 기마 여인상인데요, 말을 탄 여인이 유모와 함께 검은색의 입을 쓰고 있습니다. 유모는 비치는 천으로 만들어졌는데요. 목 부분까지 드리워진 모습입니다. 고려의 몽수는 이 유모보다는 길이가 훨씬 더 길어서 몸 전체를 덮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보시는 것처럼 고려 동경(銅鏡)에서 몽수를 쓴 것으로 추정되는 여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씨름을 구경하는 두 여인들의 모습인데요. 오른쪽의 여인이 머리 정수리부터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긴 천을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백 저포

다음은 백 저포입니다. 백 저포는 백색 모시로 만든 포로서 고려시대 귀부인의 겉옷이었는데요, 형태는 남자의 것과 비슷했다고 합니다. 『고려도경』에 기록된 귀부인의 백 저포가 어떤 형태였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자의 백 저포가 남자의 것과 비슷하다는 기록에 근거해 볼 때 곧은 깃의 교임 포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고려도경』에서는 부인들의 겉옷으로서 백 저포의 기록이 있습니다만 유물에서는 다른 종류의 포들도 나타납니다. 1302년 아미타불 복장 유물 가운데에는 여자의 옷이 3점 있는데요, 그 가운데 2점이 포입니다. 지금 보시는 옷이 '자의(紫衣)'인데요, 이 옷은 묵서의 명칭이 '자의(紫衣)'로 되어있어서 이름만 보면 저고리처럼 느껴지지만, 실제 크기를 볼 때 저고리가 아니라 포 종류로 판단되고 있습니다. 겉감은 자색 기(綺), 안감은 자색 주(紬)로 만들어진 겹옷인데요, 이 기와 주는 모두 견직물의 일종입니다. 자의의 앞길이는 110cm, 뒷길이는 133cm로 보고되고 있는데요, 이 길이는 키 165cm의 여자가 입는다고 가정했을 때, 앞길이가 무릎 부근까지 그리고 뒷길이가 발목 부근까지 내려오는 정도의 길이입니다. 이처럼 자의는 뒷길이가 앞길이보다 길고, 또 소매도 긴 편이며, 직배래 형태입니다. 옆트임이 있고 매듭단추로 여며서 입도록 되어 있습니다. 지금 보시는 이 옷도 포 종류로 여기지는 옷인데요, 옷 길이가 자의의 앞길이와 동일합니다. 이 옷은 자의의 밑받침 옷이었을 가능성이 있어서 학계에서는 편의상 '중의(中衣)'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백색의 주(紬)로 만들어진 홑옷입니다. 이 옷은 자의보다 소매가 더 긴 것이 특징입니다. 역시 옆트임이 있고 매듭단추로 여며 입도록 되어 있습니다.

귀부인의 관고

다음은 귀부인의 넓은 바지, 즉 관고(寛袴)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고려의 귀부인들은 백 저포 아래에 무늬 있는 능직 물로 만든 넓은 바지를 입기도 했는데요, 이 바지는 생초, 즉 생사(生絲)로 얇고 성기게 짠 옷감을 안감으로 써서 몸에 붙지 않도록 넉넉하게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고려의 귀부인들이 하의용 겉옷으로서 치마가 아니라 바지를 입기도 했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치마

다음으로 치마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려의 여인들은 가을철과 겨울철 치마로 간혹 황색 견(絹)을 사용했는데, 어떤 것은 색이 짙고 또 어떤 것은 색이 엷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돌려 입는 치마, 즉 선군(旋裙)이라는 것이 있었는데요, 이 치마는 8폭으로 되어있어서 겨드랑이까지 끌어올려 높이 묶을 수 있는 식이었습니다. 무수하게 몸을 휘감는데 휘감는 것이 많을수록 고상하게 여겨서 부귀한 집안의 처첩은 치마를 만들 때 옷감을 7~8 필(疋)까지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치마는 저고리와 함께 착용했는데요, 입는 방식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저고리를 치마 안에 넣어서 입는 식이었고, 다른 하나는 저고리를 치마 밖으로 내어서 입는 식이었습니다. 지금 보시는 그림은 14세기 초 《관경 16 관변상도(觀經十六觀變相圖)》의 부분인데요, 직령 교임의 대수 저고리를 홍색 치마 안에 넣어서 입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다음 그림은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의 일부인데요, 부인이 황색의 통수 저고리를 홍색 치마 밖으로 내어서 입은 모습입니다. 백색의 치마 허리끈을 매듭지어서 옆에 드리운 모습도 보입니다.

저고리

다음은 저고리입니다. 고려시대의 여자 저고리는 모두 직령 교임식의 저고리로서 길이는 엉덩이 부근부터 허벅지 중간 길이까지 다양했습니다. 이 시대의 여자 저고리의 가장 큰 특징은 허리에 대를 매지 않고 매듭단추와 같은 다른 여밈 수단으로 옷을 여며서 입었다는 것입니다. 고구려 여인들이 허리에 대를 매서 옷을 여민 것과는 차이가 있죠. 그리고 저고리 깃 부분에 동정이 달리기 시작했다는 점도 중요한 특징입니다. 지금 보시는 그림은 앞서 살펴본 《수월관음도》에 등장하는 여인의 상반신인데요, 저고리의 길이가 엉덩이 부근까지 내려오는 정도이고 옆트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허리에는 대가 없습니다. 또 깃 부분에는 흰색의 동정이 확인됩니다. 지금 보시는 것은 1302년 아미타불 복장 유물 가운데 '초척삼(綃脊衫)'이라고 명명된 옷인데요, 이 옷은 소색(素色)의 초(綃)로 만들어진 홑옷입니다. 옷 길이가 56cm 정도인데요, 만약에 키 165cm의 여자가 입는다고 가정했을 때 엉덩이 부근까지 오는 정도의 길이입니다. 초척삼은 소매 배래에 굴곡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옆선에 작은 옆트임이 있고, 매듭단추로 여며 입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밀양 고법리의 박익 묘 벽화에서도 고려 말기의 여자 저고리 착용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허벅지 중간까지 오는 길이에 겨드랑이까지 닿을 정도로 여밈이 아주 깊은 저고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복식 소품과 장신구

다음은 복식 소품과 장신구입니다. 고려의 귀부인들은 허리에 감람색의 허리띠[勒巾]를 매고 여기에 금방울과 향주머니를 장식으로 찼습니다. 향주머니가 많을수록 부귀한 집안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또 고려의 여인들은 손에 부채를 쥐기도 했는데요, 이때 손톱이 보이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서 붉은색 주머니[絳嚢]로 손을 감싸서 가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여자의 머리 모양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려도경』 부인 편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부인의 머리 모양[髻]은 귀천을 막론하고 똑같다. 오른쪽 어깨로 내린 후 나머지 머리카락은 아래로 늘어뜨리는데, 강색 라[絳羅]로 묶고 작은 비녀를 찔러 놓는다. 음악을 연주하는 기녀[女倡]는 빗어서 만든 머리 모양이 느슨하니 추마계(墜馬髻) 일 것이다. 백성[民庶]의 집에서는 여자가 시집을 가기 전에는 홍색 라[紅羅]로 머리를 묶고 나머지를 아래로 늘어뜨린다. 남자도 마찬가지인데, 홍색을 검은색 끈[黒繩]으로 바꾼 것이 다를 뿐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기록에서 기혼 부인과 미혼 여자의 머리 모양이 달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혼인 경우에는, 여자와 남자의 머리끈 색이 다를 뿐 머리 모양은 같았다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고려도경』의 기록에 비추어 추정해 볼 때, 고려 부인의 머리 모양은, 머리카락 일부분은 묶어서 비녀를 꽂아 정리하고, 나머지는 아래로 드리우는 형식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이러한 설명에 어느 정도 부합되는 머리 모양을 고려 불화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금 보시는 그림은 《관경 16 관변상도》의 부분인데요, 앞 여인의 머리 모양을 보시면, 한쪽 머리는 어깨 위로 둥글게 묶고 있고, 반대쪽 머리는 묶지 않고 그대로 드리우고 있는 모습입니다. 기혼 부인의 머리 모양이 아마 이와 유사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고려도경』에서 미혼 남녀의 머리 모양은 머리카락을 묶고 나머지는 아래로 늘어뜨린다고 했는데요, 지금 보시는 것처럼 방배동 출토 목우 상의 뒷모습에서 미혼 남녀의 머리 모양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고려시대의 불화와 벽화에서는 더욱 다양한 머리 모양이 등장합니다. 지금 보시는 것처럼 부인의 화려한 얹은머리와 시녀의 쌍수계(雙垂髻) 이러한 머리 모양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고려시대 여자의 평상복에 대해 함께 공부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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