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1392년 이성계에 의해 건국되었고, 1910년 일제 강점으로 멸망하기까지 519년간 존속했습니다. 조선은 건국이념으로 '숭유 배불 주의(崇儒排佛主義)'를 내세워서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정치·문화·사상의 근본이념으로 삼았습니다. 따라서 조선시대 복식에는 유교적 의미와 상징이 내재된 경우가 많습니다. 조선시대는 대체로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을 기준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요, 조선 전기에는 『국조오례의』, 『경국대전』과 같은 예전과 법전이 완성되었고 이에 따라 관복 제도가 체계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사회적으로 큰 변화를 겪게 되고, 일부 복식 제도에도 변화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17세기 전반기, 중국에서는 명이 멸망하고 청이 건국되는데요, 조선의 관복과 예복은 이전의 제도를 지키면서 부족한 부분은 조선의 방식과 제도로 보완하는 식으로 재정비되었습니다. 18세기에 안정기로 접어들면서 실학과 서민문화가 융성하고 예술에서는 자유분방함과 즉흥성이 발전하게 되었는데요, 복식에서는 남자 포의 소매가 넓어지고 여자 저고리의 길이가 짧아지는 등 외관과 형태의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19세기 말 의제개혁 이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조선시대 복식에 관한 자료는 고려 이전까지의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단히 풍부하게 남아있는데요. 문헌, 회화, 유물 등 자료의 유형이 다양하고 자료의 수량도 많습니다. 특히 조선시대의 복식 자료 중에서도 분묘에서 발굴된 출토 복식과 후손들에게 전해 내려온 전존(傳存) 복식 유물들은 조선시대 복식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실물 자료들을 통해서 조선시대 복식의 구성적 특징과 형태를 매우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조선시대 왕의 관복에 대해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왕의 관복으로는 면복(冕服), 조복(朝服), 상복(常服), 그리고 군사(軍事) 복식이 있습니다. 먼저 면복을 살펴보겠습니다. 면복(冕服)은 면류관(冕旒冠)과 곤복(袞服)으로 이루어진 복식입니다. 면복은 혼례에서 왕이 법복(法服)으로 입었고, 또한 종묘(宗廟)와 사직(社稷:토신과 곡신)에 제사 지낼 때 제복(祭服)으로 입었으며, 정조(正朝), 동지(冬至), 조회(朝會)에서 대례복(大禮服)으로도 입었습니다. 조선 건국 초기에는 고려 공민왕 때 명에서 사여 받은 구류면 구장복을 모방하여 입었습니다. 태종 대 이후에는 명으로부터 면복을 사여 받아 입었는데요, 당시 왕의 면복은 명에 비해 2등급 낮춘 관복 제도를 적용한 것으로서 명의 친왕(親王)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임진왜란과 명·청 교체기를 거치면서 국내외의 여러 요인으로 인하여 조선 후기에는 기존에 사여 받았던 면복을 본 따서 국내에서 제작하여 입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조선 후기의 면복은 그 제도에 있어 여러 논의가 있었다고 합니다. 말기에는 고종 34년(1897)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황제 즉위식에서 중국의 황제와 동격인 12류면 12 장복을 입었습니다. 면복의 구성 품목은 『국조오례의 서례』에 실린 그림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규(圭), 면류관(冕旒冠), 의(衣), 상(裳), 대대(大帶), 중단(中單), 패(佩), 수(綬), 방심곡령(方心曲領), 폐슬(蔽膝), 말(襪), 석(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규(圭)는 머리 부분의 좌우가 사선으로 된 장방형의 의물인데요, 면복 일습을 입은 후 가장 마지막에 손에 드는 것입니다. 『국조오례의 서례』에 의하면 청옥(靑玉)으로 만들고 길이는 9촌이라고 합니다. 고종이 황제에 오른 후에는 12 장복에 1척 2촌의 백옥규를 들도록 규정했습니다. 면류관(冕旒冠)은 평천관(平天冠)이라고도 합니다. 면판은 전원 후방(前圓後方) 형, 즉 앞이 둥글고 뒤가 곧은 형태입니다. 겉이 검고 안이 붉으며, 뒤보다 앞이 약간 숙여진 특징이 있습니다. 면판 앞뒤로 구슬을 꿰어 만든 류가 9줄씩 달려 있습니다. 이는 친왕의 것을 사여 받았기 때문이며, 황제의 것은 12류, 왕세자는 8류, 왕세손은 7류가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모자의 좌우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꽂는 비녀가 있고, 여기에 끈을 걸어서 내리고 모자의 하단에서 끈을 달아 턱 밑에서 묶어서 늘어뜨려 착용합니다. 의(衣)는 현의(玄衣) 또는 곤의(袞衣)라고도 합니다. 약간 붉은빛을 띠는 검푸른 색인 현색 증(繒)으로 만들며, 소매가 넓고 좌우의 섶을 여며 입는 교임 형입니다. 깃과 섶, 도련과 수구에 선 장식이 있습니다. 이 옷의 특징은 장문인데요, 왕의 면복을 9 장복이라고 하는 것은 상의인 현의에 5가지의 무늬와 하의인 훈상에 4가지의 무늬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현의에 장식된 5장 문의 종류와 위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양 어깨에 용(龍), 등에 산(山), 양 소매의 바깥쪽에 화(火), 화충(華蟲), 종이(宗彛)가 그려져 있습니다. 면복에 있는 장문들은 왕이 갖추어야 할 여러 가지 덕목들을 상징합니다. 상(裳)은 강색을 세 번 물들인 훈색(纁色) 증(繒)으로 제작하는데요, 앞은 3폭을 이어서 만들고, 뒤는 4폭을 이어서 만든 형태입니다. 앞뒤의 가장자리에는 선 장식을 둘렀습니다. 훈상의 앞부분에는 4장 문인 조(藻), 분미(粉米), 보(黼), 불(黻)을 수놓았습니다. 면복의 의와 상에 표현된 장문은 신분에 따라 그 수가 달랐는데요, 황제는 일(日), 월(月), 성신(星辰)이 추가된 12 장복, 그리고 왕은 9 장복, 왕세자는 7 장복, 왕세손은 5 장복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음양오행사상에 따라 장문의 표현 기법도 달랐는데요, 의(衣)에는 양(陽)의 의미로 무늬를 그림으로 그리고, 상(裳)에는 음(陰)의 의미로 자수를 놓았다고 합니다. 대대(大帶)는 『세종실록』 오례의에 의하면 비색과 백색의 증[緋白繒]을 합봉 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모양은 가로형의 대[帶]와 그 양쪽에 드림이 내려져 있는 형태이며 대와 드림에는 선장식이 보입니다. 그리고 드림 옆으로는 광다회 띠가 달려있는 형태입니다. 중단(中單)은 백색의 사 [白紗]로 만든 장포인데요, 소매가 넓고 좌우의 섶을 여며 입는 교임 형입니다. 깃과 섶, 도련과 수구에 청색 선 장식을 두르고, 깃에는 11개의 불문(黻文)을 그렸습니다. 패(佩)는 패옥을 의미하는 것으로 면복을 입을 때 사용하는 옥 장식물입니다. 위쪽에 달린 금구를 이용하여 혁대의 좌우에 걸었습니다. 수(綬)는 면복 뒷부분에 드리우는 장식물로 후수(後綬)라고도 합니다. 아래에 술 장식이 있고, 위에서부터 3가닥의 매듭을 늘어뜨린 형태입니다. 폐슬(蔽膝)은 훈색의 증으로 만들었으며, 면복 앞부분에 드리우는 장식물입니다. 조, 분미, 보, 불 4 장문을 세로 방향으로 장식하였고, 가장자리에는 선을 둘렀습니다. 말(襪)은 홍색 버선으로 겉감은 비색 단[緋緞]으로 하고 안감은 비색 초[緋綃]로 만들었습니다. 발목 부분에 선이 있고, 좌우로 묶는 끈이 달려 있는 형태입니다. 석(舃)은 홍색의 반장화 형태인데요, 겉감을 비색 단(緞)으로 하고 안감을 백색 증(繒)으로 만들었습니다. 신코 부분에 장식이 있고, 발등 부분에 술을 장식한 형태입니다. 방심곡령(方心曲領)은 『세종실록』 오례의에는 없던 것이 『국조오례의 서례國朝續五禮儀序例』에 추가된 품목인데요, 백색이며 원형의 목둘레 아래에 네모형이 부착된 모양입니다. 지금 보시는 그림은 사후 왕으로 추존된 익종의 어진인데요, 면복을 착용한 모습입니다. 화재로 인해 절반이 손상되었지만 면복의 구성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면류관을 쓰고 있고, 현의의 어깨와 소매 부분에 장문이 보입니다. 백색 방심곡령, 상과 폐슬, 패옥의 일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왕의 조복입니다. 조복(朝服)은 원유관(遠遊冠)과 강사포(絳紗袍)로 이루어진 복식으로 원유 관복(遠遊冠服)이라고도 합니다. 조복은 정월 초하루와 동지, 원단, 왕의 탄신일 등 경축일에 왕이 입었던 예복이며, 혼례의 일부에 입는 법복이기도 합니다. 세종대에 처음으로 명으로부터 사여 받아 국말까지 착용하였으며, 고종이 황제가 된 이후에는 황제의 통천관(通天冠)과 강사포(絳紗袍)를 조복으로 착용하였습니다. 구성 품목은 『국조오례의 서례』에 실린 그림과 같이 규(圭), 원유관(遠遊冠), 의(衣), 상(裳), 대대(大帶), 중단(中單), 패(佩), 수(綬), 폐슬(蔽膝), 말(襪), 석(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규(圭)는 조복 일습을 입은 후 가장 마지막에 손에 드는 의물로, 『국조오례의 서례』에 의하면 청옥(靑玉)으로 만들고 길이는 9촌이었습니다. 원유관은 현색(玄色) 라(羅)로 만들며 아홉 개의 양[梁]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양에는 18개의 옥을 5가지 색상인 황색, 창색, 백색 주색, 흑색 순서로 꿰었습니다. 금비녀를 꽂고, 양쪽에 두 가닥의 붉은색 끈인 주조(朱組)를 사용하여 턱 밑에서 매고 나머지는 늘어뜨린 형태입니다. 양의 개수는 황제는 12량, 왕은 9량, 왕세자는 8량, 왕세손은 7량으로 신분에 따라 구분됩니다. 의(衣)는 강색의 라[(絳色衣]로 만들었는데요, 옷의 형태가 면복의 현의와 비슷하나 장문이 없고 홍색인 것이 특징입니다. 상(裳) 역시 강색의 라[絳色衣]로 만들었습니다. 앞은 3폭을 이어서 만들고, 뒤는 4폭을 이어서 만든 형태로 면복의 상과 유사합니다. 대대(大帶)는 비색과 백색의 라(羅)로 만들며, 형태가 면복의 대대와 유사합니다. 중단(中單)은 백색의 라[白色羅]로 만든 장포이고, 소매가 넓으며 좌우의 섶을 여며 입는 교임 형입니다. 깃과 섶, 수구에 홍색 선장식을 두르고, 깃에는 11개의 불문(黻文)을 그렸습니다. 패(佩)와 수(綬)는 면복의 것과 같습니다. 폐슬(蔽膝)은 강색의 라로 만들었으며, 조복 앞부분에 드리우는 장식물입니다. 사다리꼴 형태이며 장문이 없고 가장자리에 선 장식을 둘렀습니다. 말(襪)과 석(舃)은 각각 홍색으로 면복의 것과 같습니다. 지금 보시는 그림은 통천관과 강사포를 착용한 고종 황제의 어진인데요, 조복의 구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증보 문헌 비고(增補文獻備考)』에 의하면, 고종이 황제가 된 이후 원유관 대신 통천관(通天冠)을 착용하였고, 강사포는 제도가 같으나 중단의 홍색 깃에 불문(黻文)을 중국 황제의 예에 맞게 13개를 금박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적석이 아닌 흑화를 신고 있는데요, 이러한 모습에서 국속화된 조복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왕의 상복입니다. 상복(常服)은 익선관(翼善冠)과 곤룡포(袞龍袍)로 이루어진 복식으로 익선 관복(翼善冠服)이라고도 합니다. 상복은 왕이 일상 업무를 볼 때 입는 시무복이며, 혼례의 일부에 입는 법복이기도 합니다. 세종 대에 면복과 함께 사여 받아 왔으며, 당시 구성 품목은 익선관, 옥대(玉帶), 곤룡포(袞龍袍), 답호[褡𧞤], 철릭[貼裏], 화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국조오례의 서례』 전하 시사 복도설에 따르면 상복의 구성 품목은 익선관, 곤룡포, 옥대, 그리고 화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그림은 태조의 상복 본 어진인데요, 태조가 익선관을 쓰고 곤룡포를 입고 옥대를 두르고 화를 신고 있는 모습입니다. 곤룡포 안에는 답호나 철릭을 입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익선관은 모라로 싸고 양대각(兩大角)에 양 소각(兩小角)을 꽂아 위로 올린 형태인데요, 시대에 따라 형태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조선 초기의 태조 어진과 조선 후기 영조 어진의 익선관을 비교해보면, 조선 초기에는 관정의 앞이 낮고 뒤가 약간 높으며, 위로 솟은 양각이 좁은 편임에 비해서 조선 후기에는 관정의 앞이 약간 높아졌고, 뒤가 매우 높게 올라간 형태이면서, 양각은 둥글고 넓게 올라온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곤룡포는 용문의 보를 달아서 용포(龍袍) 또는 망포(蟒袍)라고도 하는 옷인데요, 태조 어진에서는 청색의 곤룡포를 입고 있으나, 영조 어진에서는 홍색의 곤룡포를 입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보시는 이 옷은 영조의 홍색 곤룡포를 고증 재현한 작품인데요, 『국조오례의 서례』에 의하면 곤룡포는 대홍단으로 만들며, 여름용으로는 대홍사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왕의 곤룡포에는 가슴과 양 어깨와 등에 용보를 달았습니다. 곤룡포는 신분에 따라 포의 색상, 용의 발톱 수, 보의 개수와 형태가 달랐는데요, 황제는 황색 곤룡포에 5 조원룡 보, 왕은 홍색 곤룡포에 5 조원룡 보, 왕세자는 흑색 곤룡포에 4 조원룡 보를 네 군데 달았고, 왕세손은 흑색 곤룡포에 3조 방룡보를 가슴과 등에만 달았다고 합니다. 곤룡포의 형태도 시대에 따라 변화된 모습을 보이는데요, 태조 어진의 곤룡포는 깃 부분이 좁으며 소매가 좁고 긴 모습입니다. 이에 비해 영조 어진의 곤룡포는 깃 부분이 넉넉하고 목둘레선이 좀 더 내려왔으며 소매 너비가 넓어진 모습입니다. 대의 위치도 전기에 비해 좀 더 올라온 모습입니다. 옥대는 가죽으로 띠를 만들어 비단으로 씌우고 그 위에 무늬를 새긴 옥으로 만든 과판을 붙여 장식한 형태입니다. 그리고 화는 검은색 사슴 가죽으로 만들었습니다. 지금 보시는 이 그림은 고종 황제의 어진인데요, 익선관에 황색 곤룡포를 착용한 모습입니다.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상복을 왕의 홍색 곤룡포에서 황제의 황색 곤룡포로 변경했습니다. 이 옷은 순종 황제의 황룡포를 고증 재현한 작품인데요, 겉감이 황색이고 깃은 단령 깃 형식이며 소매는 두리 소매 형태입니다. 다음으로 왕의 군사 복식인 융복과 군복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융복은 능행, 거둥, 국난 시에 왕과 문무백관이 착용한 옷입니다. 융복 차림은 입자, 철릭, 광다회, 화로 구성됐습니다. 군복은 조선 후기에 군례를 행할 때 왕이 착용한 옷입니다. 지금 보시는 그림은 철종의 군복본 어진인데요, 공작 미가 드리워진 전립을 쓰고, 동달이(협수)와 전복을 착용했으며, 넓은 요대 위에 남색 전대를 가슴에 매어서 드리우고, 수화자를 신은 모습입니다. 가슴과 양어깨에 용보를 하여 왕의 군복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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